
지난여름, 한 아파트 단지에서 여섯 살 아이가 놀이터로 가던 중 SUV 차량에 치이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피했지만, 부모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경찰 조사 결과였습니다. 운전자는 분명 아이를 친 가해자였지만, 해당 장소가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즉, 중과실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아파트 단지 안 도로는 사실상 회색지대입니다. 일반 도로처럼 차가 다니고 보행자도 있지만, 법적으로는 '사유지'로 분류되어 신호 체계나 단속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런 구조적 모순은 이미 수년째 지적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단지 내 도로를 '공공도로'로 지정하려면 관리주체와 행정구역의 책임이 엮이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해,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습니다. 이처럼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교통사고와 관련한 법의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ABC타이어에서 전해드립니다.

# 전동킥보드, 대학 캠퍼스… 도로일까 아닐까
전동킥보드에 대한 운전자들의 불만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킥보드는 면허 없이 탈 수 있었고, 헬멧 착용도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도로 위의 '무법자'라는 오명을 얻었습니다. 법 개정으로 이제는 면허와 헬멧이 의무화되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골목길에서는 킥보드의 위치가 모호합니다. 차처럼 달리면 위험하고, 보행자처럼 움직이면 교통방해가 됩니다.
앞서 예로 든 아파트 단지 뿐 아니라 대학 캠퍼스도 모호한 곳입니다.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가 함께 움직이지만 경찰의 단속이나 교통표지가 거의 없습니다. 사고가 나면 학교는 "학내 도로는 통계 대상이 아니다", 보험사는 "공공도로가 아니므로 일반 교통사고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몇몇 대학에서는 학생이 교수 차량에 치이거나, 킥보드와 충돌해 부상을 입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지만, 사고 관리나 예방 대책이 제대로 세워진 곳은 드뭅니다.
이처럼 법이 다루지 못하는 '틈새 공간'들이 도심 곳곳에 존재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일상적인 생활공간이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인 셈입니다.

# 책임이 흐릿하면 안전도 흐릿
법의 사각지대가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벌을 피하기 쉬워서"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이 불분명하면 예방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어차피 단속도 없으니까'라며 과속하는 운전자, 캠퍼스 내에서 '여긴 학교니까 괜찮겠지' 하며 킥보드를 무단으로 타는 학생들… 모두 그 인식 속에 법의 사각지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책임의 공백은 결국 경각심의 부재로 이어집니다. 운전자는 조심하지 않고, 보행자는 방심합니다. 그 결과, 사고는 더 자주 일어나고, 피해는 늘어납니다. 더 나쁜 건 사고 이후입니다. 법적 근거가 모호하니 피해자 구제가 늦어지고, 가해자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상처 입은 사람만 남습니다.
사각지대를 줄이려면 단속이나 처벌 강화 이전에, 법이 미처 닿지 못한 공간을 제도적으로 끌어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도로교통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적용 범위를 재조정하거나, 일정 기준 이상의 단지·캠퍼스에는 '교통관리지정구역'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법의 사각지대'라는 단어는 어디선가 들으면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건 우리가 매일 걷고 달리는 공간 안에 존재합니다. 아파트 단지, 학교, 골목길, 주차장… "여긴 괜찮겠지", "조금만 가면 되니까" 하는 순간들이 사고를 부르고, 법은 그 뒤를 쫓아오지 못합니다.
법이 완벽하지 않다면, 최소한 우리의 의식이 그 빈틈을 메워야 합니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주의 깊게, 그리고 '여기도 도로다'라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 그 작은 변화가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ABC타이어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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